'한국적'인 것은 한국 덕후들의 무거운 숙제?

요즘 한국에서 이른바 오타쿠 문화를 즐기고 창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애써 한국적인 요소를 그리고 드디어 한국적인 것이 되었다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런 과정은 타국에서 받아들인 문화가 성숙해감에 따라 자연스레 진행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적인 것을 이루는 것이 언제부터 이런 과업이 되었을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는 한국인이다. 우리가 평소에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의 방식이다. 우리는 영미 번역서를 읽거나 아메리칸 조크를 들었을 때 어색함을 느낀다. 당연하다. 그것은 그 나라 사람들이 쓴 글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단순히 '영어로 씌어진 글'이 아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 영미 문학작품들은 애초부터 영미적인 사고방식인 영어, 그런 문체로 씌어진 글이다. 문화라는 것은 처음 태어날 떄부터 어떤 국가적인 색을 띌 수밖에 없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왜냐면 문화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은 국가에서 태어나고 국가의 보편적인 정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서 출판된 한국형 라이트노벨이라는 '미얄의 추천(시드노벨)'은, 번역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본 라이트노벨. 더 추가해서 얘기하자면 한국의 몇몇 민담이나 시를 빌려다 쓴 일본소설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유명한 야겜 페이트/스테이나이트에서는 영국의 아서왕이야기를 차용했다. 그러면 그것은 영국적인 것이 되는가? 그러면, 우리나라의 만화 '라그나로크'는? 그것은 '북유럽적'인것인가?
한국적인 소설이 되려면 한복입고 나와야 하냐는 말은 하지 않는것이 좋겠다.

우리는 억지로 한국적인 것을 쓰려고 할 필요도 없고 한국적이지 않다고 깔 필요도 없다. 억지 쓸 필요도 없고.
왜냐? 우리는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이 쓴 글은 자연스레 한국적일수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 하는 생각, 말, 주변사람들, 생활습관, 그 모든 것이다. 정서 그 자체다. 여기서 한국적이라는 것은 그 옛날 조선시대 한복입고 공자왈 맹자왈하는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하는 생각과 생활습관, 그나라에 사는 서민들이 대체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그 모든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체 왜? 국산 라이트노벨을 표방하는 시드노벨은 왜색적이라는 평응 피할 수 없는걸까?
다른 나라에는 이런 가볍게 읽을만한, '라이트'한 소설이 없나? 하이틴 층을 겨냥한 소설은 많다. 어느나라에나 있다. 아니,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찾아보자. 우리나라의 인터넷소설이나 하이틴 연애소설은 좀 어떤가? 왜 그런 소설들은 작품성을 의심받을지언정 왜색적이라고 까이지 않는가?(오히려 한국인들의 공감을 사면 샀지) 나를 포함한 수많은 덕후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우리가 라이트 노벨이라고 부르는  장르 자체가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라노베를 일본것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그러기에 시드노벨의 작가진들은 자신이 일본의 장르를 쓰고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 왜색적이라고 까이긴 하지만 애써 그 사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본에서 온 장르고, 그 점을 처음부터 감수하고 사업을, 집필을 시작했다. 한국적인 하이쿠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어려운 일이다. 거의 없겠지만 한국에서 하이쿠를 쓰는 한국인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그 사람이 쓰는 하이쿠는 '우리나라의 시조랑 다르네요' 라면서 왜색적이라고 까일까?

 언제부터 한국적인 일이 무거운 짐이 되고 과업이 되었는지. 한국사람이 쓴 작품이 한국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왜색적이라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움'과 덕후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다가가기 힘든 '접근성'때문일 것이다.
자연동인팀에서 야겜 하나만 내도 왜색적이라고 까이지만.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는 왜색을 피할수가 없다. 창작자부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왜색을 가슴 깊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문학을 하는 사람이 쓰는 글이 아니라 애초부터 덕후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완전히 글의 성격이 다르다. 내가 가끔 가는 '거울'이라는 환상소설 커뮤니티가 있다. 그 곳도 라이트한 성격의 SF 환타지가 주로 연재되는 커뮤니티인데 여기는 영미권 환상소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로 모여있다.(로저 젤라즈니나 더글라스 아담스같은..) 왜 그럴까? SF란 장르 자체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보면 쉽다. 단순히 팝송 듣는 사람이 제이팝 듣는 사람보다 덜 까이는 원리대로, 그 곳 사람들은 애써 한국적인 SF라는 용어에 매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순수문학에 관심있는 사람이 쓰면 썼지.

우리가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 아닌 일본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월드'다. 소꿉친구, 여동생, 다정한 선배와 말 잘 듣는 메이드가 나오는 오타쿠 문화가 만들어낸 세계. 어차피 그딴건 실제 일본사회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가상세계를 우리는 받아들였다. 그 월드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세계를 왜색적이라고 한다. 물어보자. 일본에 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색적이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고. '이것이 일본적이라고 생각합니까?' 답은 100% 아니다일 것이다. 게다가 다들 잘 알다시피 어떤 일본인들은 오타쿠 문화를 혐오하기까지 한다. 그 사람들이 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종류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다미방, 낫토, 유카타, 전통을 벗어나면 일본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생활 말이다. 이른바 오타쿠적인 세계관보다는 이것이 우리의 일상과 더 가까울 것이다. 일본순수문학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오히려 일본순수문학들이 왜색적이라든가 위화감이 든다든가 그런 느낌이 적을때가 있다. 당연하다. 그런 작품들은 '월드(세계관)'나 '캐릭터' 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모습에 더 집중하기 떄문이다.
우리는 일본이 아닌 일본이 만든 하위문화중 하나, 현실엔 없는 세계를 받아들였다. 어떤 특이한 배경과 일정한 공식마저 존재하는 캐릭터, 능력이 있는 세계. 떄문에 왜색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그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일본이 아닌 일본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계를 받아들인 것이니까. 때문에 사람과 도시의 이름만 한국명으로 바꿔버리면 일본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다른 나라가 만들어낸 다른 문화. 그러니까 그것은 한국도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오타쿠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은 일본이라기보다는 그 '월드'를 머릿속에 담는다. 때문에 뭐가 왜색적이라는 건지도 사람들은 가끔 모른다. 때로는 쓰는 사람조차 혼란스러워한다. 분명히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고, 일단 배경은 일본이 아니니까, 한국인들과 한국 학교가 나오고, 한국의 민담등을 끌어와서 그 세계는 분명히 일본이 아니게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한국이 아니게'느껴버린다. 당연하다. 그것은 일본인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가상세계를 베이스로 한 세계니까.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왜색적이다'라고 느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 세계를 기본으로 인지하고 나서 쓰기에 결코 고쳐질 수 없는 거다. 문화가 그래서 무섭다는 거겠지. 그 국가 자체도 아닌 형체도 없는 그 어떤 사고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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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좋아하면 -> 일빠라는 공식이 성립했지만...
한국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라이트 노벨등을 좋아하는 저를 포함한 이른바 '덕후' 여러분 화이팅입니다ㅋ


위의 글과 상관없는 이야기. 순수문학을 위한 변명.

by mariworld | 2008/08/13 17:06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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